지난 편에서는 조선시대 서울이 ‘도성’과 ‘성저십리’라는 두 겹의 경계 안에서 500년 넘게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을 유지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그 오래된 질서가 깨지고, 서울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시기, 바로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910년, 조선은 대한제국에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1914년, 서울의 시역은 크게 축소됐다. 조선시대 내내 도성과 그 주변 성저십리까지가 ‘서울’로 여겨졌는데,
일제는 성저십리 대부분을 시역에서 제외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도시란 시가지가 형성된 곳”이라는 서구식 관념 때문이었다.
성곽 밖 농경지와 마을이 도시의 일부라는 생각은 그들에게 없었던 것이다.
사실 성저십리는 오늘날로 치면 ‘그린벨트’ 같은 완충지대였지만, 일제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축소된 시역은 1936년에 다시 확장됐다. 조선 개국 초기 성저십리 범위와 비슷한 수준까지 회복된 셈이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처음으로 한강 남쪽 땅이 서울에 포함된 것이다. 바로 영등포 일대였다.
영등포는 당시 서울 근교의 첫 번째 대규모 공장 지대였고, 산업과 인구가 빠르게 늘던 곳이었다.
이로써 한강이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라, 산업과 확장의 방향이 될 수 있다는 신호가 켜졌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도 움직였다. 원래 대한제국 시절에는 경운궁이 중심이었지만,
을사늑약 이후 일제가 남산 북쪽에 총독부 청사를 두면서 남촌이 중심이 됐다.
하지만 1926년, 총독부는 구 경복궁 터에 새 청사를 지었다.
조선의 상징이자 심장이었던 경복궁 자리에 식민지 권력의 심장을 옮긴 것이다.
이로써 정치적 중심은 북촌으로 돌아왔지만, 그 중심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의 차지였다.

행정구역도 재편됐다. 1943년, ‘구제도’가 시행되며 서울은 7개 구로 나뉘었다.
도성 안 청계천 북쪽은 ‘종로구’, 남쪽은 ‘중구’가 되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인 거주지였던 남촌이 ‘중구’라는 명칭으로 서울의 중심임을 행정적으로 확정지었다.
종로구는 그 이름 덕에 역사적 상징은 유지했지만, 행정·경제적 중심지는 더 이상 아니었다.
지금은 종로구와 중구를 서울의 중심부로 묶어 크게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일제강점기만 해도 이 둘은 성격이 뚜렷이 달랐고, 중심의 의미도 확실히 나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성곽과 성저십리로 한정된 울타리 속에서만 ‘서울’이 존재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경계는 처음으로 그 울타리를 넘어섰다. 한강 이남 일부가 시역에 편입되고, 산업지대와 행정구역이 확대되면서 서울은 더 이상 조선시대의 작은 도성에 머무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서울은 점차 ‘확장되는 도시’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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