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따르더라도 전세를 끊어내야 한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다.
통화정책 수장의 입에서 ‘전세제도 폐지’라는 강도 높은 주장이 나온 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앞으로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암시하는 중요한 신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즉각적인 폐지는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전세라는 주거 형태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물론 경제학자이자 금융 안정을 책임지는 한은 총재의 입장에서 보면, 전세 제도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세보증금이라는 거대한 목돈이 생산적인 투자 대신 주거에 묶여 소비를 위축시키고,
‘갭투자’의 발판이 되어 집값 상승을 부추기며, 200조 원에 달하는 전세대출은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작용해왔다.
거시경제의 안정성만 생각한다면 ‘끊어내야 할 고리’로 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수많은 청년과 서민들에게 전세는 단순한 임대차 계약을 넘어,
고된 월세살이에서 벗어나 내 집 마련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목돈을 모아 전세로 옮겨가 주거 비용을 아끼고, 그 기간 동안 더 악착같이 돈을 모아 마침내 내 집을 장만하는 것.
이것이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내 집 마련 공식’이었다.
다만, 이 ‘주거 사다리’로서의 전세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지점도 있다.
최근 몇 년간 급증한 전세대출 규모나 천정부지로 솟은 수도권의 전세 가격을 보면,
과연 지금의 전세가 과거처럼 ‘목돈을 모으는 동안 주거 비용을 아끼는’ 개념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임차인이 이미 월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이자’를 매달 은행에 내고 있을 뿐이며,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내며 전세로 거주하는 경우가 보편화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변형된 월세’로서의 전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든 싫든 전세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주거 문화로 깊숙이 뿌리내렸다.
이 총재의 발언처럼 고통을 감수하고 이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끊어냈을 때, 과연 우리 사회는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미 10·15 대책 이후 전세 매물 실종과 월세 폭등이 현실화되고 있고, 앞으로 몇 년간 서울의 입주 물량 급감이 예고된 상황에서,
전세마저 급격히 사라진다면 주거 불안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결국 한은 총재의 발언은, 설령 그것이 당장의 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전세의 역할이 축소되는 세상’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함을 시사한다.
이제 ‘전세→내 집 마련’이라는 익숙한 경로 대신, ‘월세→내 집 마련’이라는 훨씬 더 가파르고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곧 내 집 마련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짐을 의미한다.
월세 부담(혹은 전세 대출 이자 부담)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일찍, 더 적극적으로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동시에, 정부는 단순히 전세를 억제하는 것을 넘어,
초장기 모기지론 활성화나 지분 적립형 주택 확대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주거 사다리’를 놓는 일에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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