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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보

섞어 놓으니 더 선명해진 차별, 소셜믹스의 역설

by 핑거프린스 202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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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임대 세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배치표가 돈다고 한다.

입주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누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조건으로 들어왔는지 색깔별로 구분해 놓고 서로를 감시하는 꼴이다.

"그 집은 임대래"라는 말이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은밀한 조롱과 차별의 언어가 되고 있는 현실.

이것은 소셜믹스라는 정책이 얼마나 순진한 이상주의였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일거다.

 

서울시는 2021년부터 분양 세대와 임대 세대를 한 동에 섞는 '완전 혼합형' 소셜믹스를 의무화했다.

물리적으로 섞어 놓으면 마음의 벽도 허물어질 것이라는 기대였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섞어 놓으니 오히려 더 악착같이 구별 짓고 싶어 한다.

 

입주민들은 단톡방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배치표를 돌려가며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심지어 임대 세대가 더 좋은 층을 배정받으면 "내 돈 내고 들어왔는데 역차별"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20억 원의 벌금을 물고서라도 임대 세대를 분리하겠다는 단지가 나오는 걸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별짓기'의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하게 된다.

 

사실 이 문제를 단순히 부자들의 이기심이라고 비난만 하기엔 상황이 복잡하다.

수십억 원의 자산을 투입해 집을 산 사람 입장에서는, 내 집의 가치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이 본능이다.

관리비나 커뮤니티 시설 이용 문제, 그리고 소위 '민도'라고 불리는 생활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8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임대 주택에 들어온 세입자들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정당한 자격을 갖추고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시선과 차별을 견뎌야 하는 '강심장'이 되어야만 그곳에 살 수 있다.

 

결국 소셜믹스는 물리적 혼합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반쪽짜리 정책이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해서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이 있을수록 서로의 다름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박탈감과 우월감이 교차하는 미묘한 신경전만 벌어질 뿐이다.

"재산권 침해"라는 조합의 반발과 "사회적 통합"이라는 시의 명분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정작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불편해하며 각자도생하고 있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임대 주택을 짓는 조합과, 주택 공급을 위해 이를 밀어붙이는 시 당국 사이에서, '차별 없는 공존'은 그저 듣기 좋은 구호로만 남을 공산이 크다.

지금처럼 억지로 섞어 놓는 방식이 오히려 계층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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